교회

묵상7 – 복(福)을 구하면 안 되나요?

성경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복이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신앙 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과 세상적인 복의 개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을 조건부로 복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성수는 대단히 중요한 계명입니다. 하지만 주일성수를 함으로써 건강과 물질의 복을 받으려는 시도는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의 은총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의 은총’의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복을 뜻하는 히브리어 ‘베라카’는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바른 진리의 길로 인도받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복은 주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지 원하는 자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은 기독교인에게 주어지는 책임성과 소명의 성격을 띱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복은 개인을 위한 복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는 거룩한 책임성이 있습니다. 복을 이웃과 형제를 위한 하나님의 바른 뜻을 실현하는 도구로서 합당하게 쓰는 것이 바로 복의 책임성입니다. 물질에 대한 복도 중요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도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물질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주어진 건강도 소명으로 알며 연약한 자를 위해 사용합니다. 

※마태복음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출처: 김동건∙최병천 저, 『신학이 있는 묵상 1권』

묵상 6 – 누가 나의 이웃인가요?

우리는 이웃을 개인화해서 나와 친분이 있거나 혈육, 학연, 지연에 관련된 사람으로 제한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이웃은 나와 어떤 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웃에 대한 정의를 ‘지금 도움이 필요한 자’, ‘나를 필요로 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공간적, 사적인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관계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와 어떤 이해관계나 개인적 관계도 없지만 나를 필요로 하고 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가 바로 나의 이웃이며, 또한 그러한 사람을 돌아보고 그를 도울 때, 내가 바로 그의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의 범위를 개인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타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에 대한 시야는 매우 폭넓게 봐야 하지만, 실천은 매우 작은 것, 구체적인 것부터 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웃을 너무 광범위하게 생각한 나머지 스스로 이웃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소자에게 물 한 그릇 떠다줄 수 있는 신앙의 자세를 가질 때, 그리고 삶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할 때, 먼 나라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간절한 기도 드릴 때, 우리는 진정한 신앙 공동체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며 공동체적 이웃사랑을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누가복음 10:36-37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출처: 김동건∙최병천 저, 『신학이 있는 묵상 1권』

책 소개 : 『바보 가족의 전도행전』

 

이민자 권사님(이종일 안수집사님)의 가족이 120개의 도시와 섬을 돌며 예수님을 전한 3년간의 노방전도 이야기가 담긴 “바보 가족의 전도행전”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3년간의 시간 동안 이민자 권사님의 가정이 겪은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과 회개가 터지는 생생한 전도의 현장이 펼쳐집니다. 책의 제목처럼,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전도여행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을 뛰어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보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임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이 책에는 ‘정상 그 이상의 바보’가 예수님과 동행하며 생명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복음의 아름다운 꽃들이 산간벽지에서 피어나는 감동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순종은 하면서도 120개 도시와 섬을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던지 나는 울고 나가지 않은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약한 자를 사용하시다니”(p.314)

이민자 권사님 가족의 고백처럼, 순종은 쉽지 않은 믿음의 실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 많은 복음의 생명과 열매를 맺게 하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복음의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수고하며, 눈물로 순종할 수 있는 성도들을 찾으십니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이민자 권사님의 가족의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되어지길 바랍니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잃어버린 한 영혼을 애타게 찾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묵상5 – 십일조가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있나요?

십일조는 구약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므로 오늘의 교회가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십일조를 구약의 개념으로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십일조는 구약이나 신약 성경에 기록된 어떤 하나의 개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와 연관된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우리가 하나님께 바칠 ‘첫 번째’ 혹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온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십일조의 정신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십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것’을 주님께 감사함으로 돌리는 것이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십일조를 전체에 대한 대표성의 개념에서 본다면 그 정신을 하나님을 향한 ‘헌신’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의미로 십일조를 드릴 때,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없어집니다. 

또한 십일조를 복과 연관시키는 것은 신앙을 개인화하는 것입니다. 물론 온전한 십일조는 성경이 증언하는 것처럼 복과 연관될 수 있습니다(말 3:10`12). 그러나 십일조를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서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복은 성도의 행위에 의해 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에 의해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십일조에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뜻이 담겨 있음을 기억하며, 전 실존의 신앙고백이 십일조의 신앙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출처: 김동건∙최병천 저, 『신학이 있는 묵상 1권』

묵상4 – 겸손은 어떤 것인가요?

‘겸손’이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흔히 말씨가 부드럽다거나 성품이 온유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교회에서 ‘겸손하라’고 하면 언행을 조심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겸손의 의미를 너무 개인의 품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의 겸손은 개인의 언어 사용이나 성격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이 의미하는 ‘낮아짐’은 개인의 성품이 아니라, 낮아짐이라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기독교인의 겸손은 한 인간의 품성이나 도덕적 삶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좇아가고자 하는 ‘신앙적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겸손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좇아 사는 사람에게 타인에 대한 태도로서 ‘낮아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은 봉사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성경은 굶주리고, 갇히고, 고통당하며, 비인간화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가리켜 ‘가난한 자’ 혹은 ‘이웃’이라고 부릅니다. 겸손은 낮아진 자로서 이웃에 대한 섬김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가지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렇듯 겸손은 인간의 꾸며진 품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따르는 신앙인의 삶의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합당한 응답으로서 겸손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의 삶의 자세입니다. 

※빌립보서 2:3~4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출처: 김동건∙최병천 저, 『신학이 있는 묵상 1권』